일의 속도와 시야의 관계
2010/11/30 09:10일을 하면서도 일만 죽어라 열심히 하면 시야가 점점 좁아져서 정보의 습득 량이 줄어들고 따라서 판다력이 점점 흐려진다.
이 둘과의 관계에서 다른 것은 물체의 속도, 일의 속도다. 이렇게 치환해보니 인간의 생각도 물리학 법칙에서 벗어 나지 못하나보다.
전에 안철수 사장이 독서광이라며 책을 추천 하는 것을 보았다. 추천 하는 책들이 전부 외국 서적들이였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나또한 현제 읽는 책들 중에 대부분이 외국 서적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국책이어야만 신뢰가 가는 것 같다.
두가지가 항상 배치 되는 개념일까?
인간성이 올라가면 효율성이 낮아지고 효율성이 올라가면 인간성이 없어질까?
두개를 동시에 다 높히지는 않더라도 적절한 선에서 양립할 수는 없을까?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곳에서는 인간성이 말살 된 예는 역사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효율성을 깡그리 버리면 생산 없이 인간이 존재 가능한가? 그것 또한 아니다.
산업사회가 민주사회로 발전하면서 인본주의가 정치,사회에 걸쳐서 서서히 퍼져 나갔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상 효율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성을 어느정도까지 보장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게임을 만들고 있지만 영화나 게임이나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근데 게임은 company다. 회사란 말이다. 따라서 근로 기준법에 의거하여 노동계약을 맺고 사대보험을 들어주며 일시적이나마 고용안정을 보장해준다. 하지만 영화판은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그들의 고용안정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영화배우도 물론 비정규직이지만 스탭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저임금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버티기엔 영화판이 녹녹치 않다는 것이다.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감독들 조차도 그런 영화판의 비정규직들의 피와 땀위에 영화가 올라 가는 것이다.
그런 고고한 감독들 조차 이런 상황을 외면 하는 것일까? 사회정의는 부르짓으면서 정작 자신들의 판에 대해서는 외면을 하는 것인가? 묵계에 의해 계속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 하려는 것인가?
같은 밥을 먹는 영화 배우들이 조금만 양보를 하여도 또는 영화 감독이 투자자를 조금 설득한다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영화 감독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각성을 촉구한다.
조직에선 나를 맹목적일 정도로 따라오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대안을 가지고 건전하게 비판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조직내에 추종자만 있다고 하면 리더가 하자는 데로만 하게 될것이다. 편향된 시각을 갖기 십상이다. 반대로 비판만 하는 사람만 있다면 리더가 아무리 잘 참는 사람이라도 지치게 될 것이다. 리더가 지쳐서 일 못해먹겠다는 소리 나오면 그건 말 다 한거다.
따라서 두부류의 사람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하는데 난 그 비율을 추종대 비판, 6대 4정도로 본다. 내 겸험상 리더로서 자질이 없는 사람은 대안 없는 비판을 일삼는다. 그래서 리더를 지치게 하고 전체적으로 활력을 떨어트린다. 비판은 애정을 가지고 해야 한다. 명심하라..